셋째날은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했다.
오전에 호핑스케줄이 있다
우리와 같은 팀인 5인가족과 다른팀에서 온 새로운 가족 4명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 열대어 낚시를 한다.
여행중에서 특히나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인을 만나면 반갑고 말이 건내진다.
우리와 함류한 다른팀 가족의 가장은 유난히 넉살이 좋은 분이었다.
잠깐 5분정도 배를 타고 나가는 동안
자기들이 마닐라를 경유해서 왔고 비용도 훨씬 비싸고, 고생도 많이 했다면서
깔리보 직항이 훨씬 탁월한 선택이라며
(사실 선택이 아니고 우리가 알아볼때는 깔리보 직항밖에 없었다)
엄지손가락 까지 들어 보이고 서로의 직장에 아이들까지 모든 기본조사가 다 끝났다.
아쉽게도 난 손맛을 못봤지만 몇몇이서 열마리 정도의 열대어를 잡았는데
어종도 열가지다.가이드는 커다란 문어를 사서 구웠고 우리는 열대어를 살려 주었다.
가방에 찔러 넣었던 종이팩 소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안경을 끼고 바닷속 구경을 하는데 구경조끼를 입었으니 가라앉을일 없고,
기본 수영은 하니 이동에 문제 없고,
바닷속을 이리 가까이 볼 수 있다는것이 흔한일은 아니니
신나게 산호초며 열대어들을 구경 하는데 좀 춥다.
그리고 한번씩 물위를 보니 다른 몇사람은 들어오지도 않고
배에서 우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쯤에서 올라와야 눈총을 피하겠다 싶어 배로 올라오는데
부는 바람에 느껴지는 한기는 한국에서의 한파 못지 않다.
씨푸드식당으로 이동했다.
섬의 작은 코너를 식당이 차지하고 야외에서 점심을 먹는데 현지인 가수들이
"너" 에서 부터 "노바디"까지 부른다.
우리팀은 가이드가 웃돈을 줬는지 식탁이 따로 차려져 있고
두명당 한마리라던 게가 사람수대로 접시에 담겨있다.
워낙 게를 좋아해서 내가 제일 흡족했던 코스였다.
우리팀에는 애들이 별로 게를 좋아하지 않아 게가 남아 돌았지만
다른 테이블들은 게가 모자라는 눈치다.
그때 같이 배를 탔던 넉살좋은 아저씨가 우리식탁으로 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인사 하나로 아저씨는 게를 한마리 더 얻어갔다. 부러운 성격이다.
조금 지나서 보니 넉살좋은 아저씨는 식탁에서 일어서서
가수들의 노래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며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좋은 성격이긴 한데 좀 넘친다.
갑자기 뒤에서 무슨소리가 들리고 마주보고 앉아 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어쩔줄을 모른다. 원주민 아이들이 구걸을 왔다.
보라카이 원주민 들은 강한 인상때문에 일자리를 주지 않아
거의 구걸로 생활을 한다고 했다.
식탁엔 남아있는 음식이 많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줄 모르고 있는데
한 아이가 비닐봉지를 내민다.
소외계층이 도움을 받는것은 그들의 권리라고 배웠는데
아무리 구걸이라고 먹다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쓰레기 버리듯
몽땅 담아준다는게 마음이 편치않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고 아이들은 더 달라고 손짓을 하고
음료수병까지 구체적으로 가르키며 요구했다.
그리고는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를 건냈다.
바로 눈앞에서 딴세상을 펼치는 사람들이 남겨준 음식에
지금은 어려서 감사하지만 생각이 자라고 이성이 깨어날때
자기들이 했던 행동이나 우리들의 행동들이 분노로 재생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오후에 자유시간이라 시간이 많다.
필리핀이 영어권이라 해도 보라카이 현지인들의 영어는 우리와 별반 다를게 없어서
그런대로 말이 통한다. 한 두 단어와 표정과 몸짓으로.
컴퓨터를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데 단지 단어 세개면 된다.
computer, Internet, 뭔소린줄 모른다. use 했더니 피시방을 알려준다.
아침식사때 방번호를 확인할 때 그들도 길게 말하지 않는다.
단지' room numer ' 한마디 하면우리는 그냥 one, three, one 하든지
아니면 그냥 손가락을 접었다 펴면 된다.
물건 흥정도 가능하다.
계산기를 들고와 숫자를 입력해서 보여주는데 비싸다 싶으면 고개만 흔들면 된다.
그러면 D,C? 하면서 숫자를 내려 보여준다. 비싸다는 말은 몰라도 된다.
보라카이에서 물건 살때 정찰제 말고는 꼭 물건값을 깍아야 한다.
낮에 호핑하느라 옷이 젖기도 하고 보라카이 패션에 적응도 되어
원피스를 사서 입었다.
삼일만에 내 패션도 보라카이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