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준비할 수는 있어도 미래가 내것이라고는 우길수 없는 우리들이기에,
일년후에 음성메세지로 전해진다는 SK관의 타임머신코너에 집착했다.
일년후 우리 식구들이 내 메세지를 듣는 그 순간만은 내시간이다.
SK관은 요랍스럽지는 않았지만 자잘한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지난번에 식구들과 같이 왔을때는 한번밖에 보낼수 없었는데다가
아무생각없이 장난처럼 각자 자기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와서 아쉬움에 다시 찾았다.
다른체험은 바로 통과하고 나무시계가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타임머신코너로 향했다.
"여보 난 우리 아이들을 같이 키운 추억이 있고
나 젊었을때를 기억하고 있는 당신과 잘 늙어가고 싶어,
일년후인 지금도 그런 마음이야(이건 내 자신을 세뇌시키는 말인지도 모른다), 사랑해."
"아들아 엄마는 널 생각하면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다, 혼자 알아서 잘해줘서 고맙고,
잘해준게 없어 미안하고, 일년후 지금도 너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던,
엄마는 고맙고 미안하다. 사랑해 아들"
"딸아 이쁜 우리딸, 이쁘게 잘 커줘서 고맙다. 일년후인 지금도 이쁘지?,
말썽부리지 않고 잘 자라줘서 고마워, 사랑해"
한번씩만 녹음하고 이동을 하게 되어 있어서 두번은 재입장할 각오로 들어왔는데.
그냥 봐준다. 그렁그렁한 눈물때문에 이동하란소릴 못했을까.(어쨌건 보너스 받은 기분이다.)
목소리가 떨리더니 목이메인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깊게 숨한번 고르고 재전송을 했다.
주책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져도 창피하지도 않았다.
단지 아이들에게 엄마의 주책이 전해지진 않았을까가 걱정이다.
많이 회복하고 있고 혼자서 이리 씩씩하게 놀러도 다니지만
아직도 호르몬의 불균형을 극복하지 못한 모양이다.
다른것들로 부터는 자유로워졌는데 아이들에게만은 자유롭지 않다.
모든건 다 극복할 수 있어도 자식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안고, 품고, 보다듬고 가야하는 나보다 더 측은한 또다른 나이다.
삼층으로 올라가면 사면영상으로 아름다운강산 뮤직비디오가 상영된다.
이정현의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가지각색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멋지고 감동적인 뮤직비디오였다.
지난번에는 들리지 않았던 랩 "아름다운 이강산 그 무엇과도 안바꿔"
그래 "내 운명인 내 가족 그 무엇과도 안바꾼다." 소리소리지르며 시원하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국제관 에서 체험식사는 포기하고 식당가로 들어갔다.
이것도 더 이상 먹을만한 것도 없고 줄서는것도 지겨워서 도시락 챙겨와서
김치에 밥먹는 사람이 부럽다. 다음엔 도시락을 준비해 볼까..
2시 해상쇼를 보러 빅오장으로 갔다.
아직 1시간이 넘게 남은 시간인데 벌써 자리는 다 찼고 맨위 통로에 자리를 잡았다.
등산의자를 쓰고 싶었으나 뒷사람의 눈총을 무시할 배짱이 없어서 깔판을 깔고 앉았다.
뒤에계시던 할머니께서 의자를 좀 빌려 달란다.
빌려주는건 아무문제가 없지만 사람들이 몰려들고 복잡해지면 돌려 받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그렇다고 안빌려줄 수 도 없고 꼭 돌려줘야 한다고 다짐하고 빌려 드렸다.
해상쇼는 젯트스키의 묘기와 각종 퍼포먼스가 멋진 화려한 무대였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내 마음은 바쁘다.
등산의자야 몇푼 안들이고 살 수 있는 거지만 그건 천이 미어져서
수선집을 몇번 다니다가 특수마대천으로 수선집에서 제작한 것이라 살래야 살 수도 없는것이고
내 엉덩이와 꽤나 오랫동안 친분이 있는 의자라서 잃고 싶지가 않다.
돌아보니 역시나 사람들이 빼곡하고 내의자를 빌려간 할머니는 보이지를 않는다.
이리저리 근방을 한참서성이는데 분명 내의자를 빌려간 할머니의 바깥양반 할아버지는
나를 모른척한다. 허망하게 돌아가려다 다시 돌아와 봤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내의자를 들고 계신다. "할머니 의자 주세요"
할머니 말씀은 의자를 들고 날 찾으러 다니셨단다.
그렇다치고 할아버지의 시침이 야속하다,
연이어 잘썼다고 고맙다고 하는데 돌려받을 수 있어서 정말로 내가 고마웠다.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콘서트장으로 이동했다.
송창식의 추억의 노래와 기타소리를 듣고 싶었다.
송창식은 그의 공연에 거의 기타리스트를(이름은 잊어먹었음) 데리고 다닌다.
그의 연주는 정말 멋지다. 기타를 안만져 봤다면 기타를 배워보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이상하게 다른 악기들은 쉽게 익혀지는데 기타는 어려워서 벌써 두번째 시도하고 그만 두었다.
빵빵한 음향으로 기타 투닝을 하는 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전율이 인다.
다른 반주음악없이 기타 두대로 그 큰무대가 꽉 찬다.
현란한 기타소리와 추억의 노래로 행복한 여름밤이다.
고래사냥을 소리질러 부르고 나서 좀 일찍 일어났다. 그래야 마지막 셔틀기차을 탈 수 있다.
일찍 나온덕에 난 자리를 차지했고 통로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침 출발기차에는 통로에 앉는 사람이 없지만 저녁 돌아가는 기차에는 다들 통로에 앉는다.
하루종일 기다리고 줄을 섰으니 서있는게 지겨울 거다.
옆통로에 딸 또래의 대학생 두명이 작은 안내쪽지를 깔고 바닥에 앉을 태세다.
깔판과 의자를 내어 주었다. 내가 가진게 요긴하게 쓰이면 좋은거지,
그리고 딸 생각도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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