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떠나서

병원 가로수 벗꽃이 터졌다.

고운성 2007. 3. 28. 19:44

 

세번의 수술을 하고도

머리가 얼마나 빠지는지

얼굴모양은 어떻게 변했는지

방사선치료로 새까맣게 탄 피부가 얼마나 새살로 채워졌는지

한시도 거을을 놓지 않으시던 어머님이

거울을 놓으시고

숟가락을 놓으시고

이젠 속옷끈도 놓으시고 소변줄을 끼웠다.

 

피부로 돋아난 종양들이 썩어가면서

영화의 특수 분장에서나 봄직한 얼굴로

눕지도 못하고 몇달째 웅크리고 않아 가뿐숨을 몰아쉬는건 

사람이랄 수도 없는 주검 그 자체다.

 

부어있는 다리를 통해 영양제로 연명하는 저 삶이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거 알면서도

우리는 아무도 심지어 병원에서 조차 주사바늘 빼자는 소리를 못한다.

 

지금 가면 어찌 해볼수가 없는 마지막이기에

자기의지와는 상관없이

환자는 환자대로 고통을 견디고 있고

가족들은 그 고통을 보는 아픔을 견디고 있다.

그렇게 남은 정을 서로간 털어 내고 있다.

 

창밖에는 사람 마음을 설레이는 봄이 온다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갊이 등을 돌린 사람에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만물을 소생시킨다는 따뜻한 봄볕이 더 서럽다.

 

남들 못가는길 가는거 아니니 너무 유세부리지 말고

남들 안가는길 가는거 아니니 그리 억울해 하지도 말고

그냥 해가 떴으니 지는거 처럼 해가 졌으니 뜨는거 처럼

그리,,,,,,

 

아침 일찍 교대를 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가로수 벗꽃이 밤새 터졌다.

 

이 세상에서 나는 나 하나인거 처럼 살지만

세상에서 나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세상의 끝을 잡고 밤새 사투를 벌렸지만 

세상은 나와는 아무 상관 없이

밤새 꽃잔치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