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떠나서

벽돌과 판자 사이~

고운성 2008. 10. 7. 21:21

내 습성중 하나가 쓰던 물건을 웬만해선 버리지 않는다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내 손이 탄 물건이 편안하고 귀하고 좋다.

그리고 오래묵었다는것이 좋다는걸 알게도 되었다.

 

10년을 넘어 20년이 가까워오는 학원생활중에

시작하면서 부터 같이 했던 벽돌짝이 있다.

휑한 학원 바닥을 메꾸려고 붉은 벽돌을  사서

두꺼운 비닐을 깔고 물을 부어 실내 연못을 만들었다.

여름에는 잘 살던 금붕어가 겨울만 되면 추워서 죽어나갔다.

할수없이 연못을 철수하고 벽돌들은 학원 귀퉁이에서 벌을 서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잘 쓰던 책장이 무너지면서 그냥 버리긴 아까워서

책을 받치던 판자들을 골라 냈다.

그리고는 벽돌과 판자를 잘 쌓아 그럴싸한 책장을 만들었다.

이때가 두번째 이사한 학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세번째 이사를 했다.

여긴 너무 좁아 책장을 놓을 자리가 없었다.

다행히 창고가 있어서 책과 판자는 창고로 들어갔고

벽돌은 집으로 들고 들어와버려서 벽돌과 판자는 이별을 했다.

판자가 창고에서 먼지속에 지내는동안 벽돌은 화분을 만났다.

야생화에 빠져있던 나는 들에 피는 풀꽃은 다 들고 와서

시간만 나면 벽돌로 화단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화단만들기를 하고 놀았다.

그런데

야생화 역시 봄이면 살아 있다가 겨울도 오기 전에 다 죽어갔다.

할수 없이 화단을 철수 하고 내손에서 살아남은 실내식물만 남겨

펑퍼짐한 화분 궁둥이에 벽돌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는 본의 아니게 학원이 확장되어 다시 책장을 만들게되었다.

7년 만의 만남이다. (내가 생각해도 무던하다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다니)

창고에 판자는 페인트로 단장을 하고 벽돌을 만났다.

한창 지난 묵은얘기로 둘이 깨가 쏟아지고 있는데

새로운 책장이 밀고 들어왔다. 

동생네에서 책장을 버리긴 아깝다며 들고 왔다.

운치나 어울림이야 벽돌과 판자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세련되고 더 많은 책을 수용한다는 실용성때문에

벽돌과 판자는 또 다시 이별을 했다.

 

그러다 악기정리할 곳을 찾고 있던 나는

벽돌과 판자를 다시 불렀다.

벽돌을 바닥에 넉장씩 깔고 사이에 판자를 세웠더니

안성맞춤 악기정리대가 만들어졌다.

보자기에 싸 이불장에 넣어둔 헌옷가지들을 들추니

지난 합창단복중에 비로드천이 있다.

벽돌에 비로드를 깔아 악기를 정리하니

아무리 봐도 이리 흐뭇할 수가 없다.

 

"애들아~ 이것바라 기가 막히지??

선생님 학원 그만 두고 이길로 나갈까바~~~~"

 

"선생님 진짜로 그러면 안되요??  학원 문 닫아요~~~~~~"

 

ㅋㅋㅋ

절대로 그리는 못한다.  내가 니들하고 싸우는 재미로 사는데.

 

 

 

 책장으로 만났을때

 

 

 

악기정리대로 만났을때....